(20231016, 강원일보) [확대경]가을과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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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절기를 타는 제때가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사계(四季) 중 고난을 이기고 파릇파릇 생동하는 봄도 좋아하지만, 오색저고리로 갈아입는 단풍 든 산을 바라보며 성찰하는 만추의 계절을 가장 으뜸의 자리로 올려놓는다. 강원지역도 그렇고 강릉 역시 순후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문화유산 보물인 경포대 누정 안에는 ‘第一江山(제일강산)’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그 뜻은 ‘강릉산수갑천하(江陵山水甲天下)’라고 했던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천하에서 강릉의 경치가 최고’라는 뜻이다.
이렇듯 아름다운 절경에서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대동 축제를 만들어 왔고, 그 축제를 통해 유대와 연대를 맺어 지역 발전의 토대를 세워 놓았다. 특히 우리 지역에서는 겸손과 겸양을 미덕으로 여겨 축제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축제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공동체의 이름을 우선시했다. 한민족 축제의 원류인 강릉단오제 역시 그 축제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우뚝 솟았고, 달집을 태워 액운을 쫓는 정월대보름 강릉망월제, 모내기 때 농요인 학산오독떼기, 노인을 공경해 70세 이상 어르신들을 모셨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인 강릉청춘경로회 등 대부분의 축제(행사)가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름을 먼저 세웠던 곳이 강릉이다. 그렇다 보니 축제와 제례가 부쩍 늘어갔고 고단한 옛날 농경문화의 한 축을 담당해 왔으리라. 이처럼 축제는 아름다운 풍취, 그 지역 사람, 정서가 만나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인 셈이다.
지금 강릉에서는 축제의 파노라마가 즐비하게 펼쳐지고 있다. 자연이 만든 가을의 명장면이 연출되는 완벽한 타이밍이다. 웅숭깊은 강릉커피축제를 시작으로 한복문화주간, 와인축제,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누들 페스티벌 등 다수의 축제가 11월까지 릴레이로 펼쳐진다. 특히 강릉문화원에서는 강원지역에서 초연되는 2023 강릉대도호부관아 문화유산 미디어아트(10월14일~11월5일)를 23일간 선보인다. ‘빛으로 만나는 강릉의 신화’를 주제로 강릉 칠사당(보물)→강릉대도호부관아(사적)→임영관 삼문(국보)→의운루→대성황사터(미디어아트로 복원)로 공간별 동선이 이어진다. 동선에 따라 5개 권역으로 나눠 구역마다 확연한 차이가 있는 실감콘텐츠, VR체험공간, 홀로그램 등으로 구성됐다. 옛날과 사뭇 결이 다른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시민 곁을 찾아가게 된다. 강원지역에서 첫 출발인 만큼 많이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
필자는 올 8월 하순, 강릉문화원장에 취임해 지역 문화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한 도시의 번영과 명멸도 그 방향성이 결정하듯이, 한 도시의 품격과 가치 역시 어떤 문화예술로 스케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하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문화예술은 평생 내 삶에 활력이 되어 주었다. 떠나가는 만추를 잡아둔 풍경화가 강릉에서 연출되고 있다. 강릉의 전통시장은 홍대보다 ‘핫’하고, 이곳의 축제는 을지로보다 ‘힙’하다. 여기서 감성 한 잔, 힐링 한 모금 어떤가.
(출처 :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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